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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길목에서 속초를 만나다 <포토수기 입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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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조회수
8673
수정일
2012.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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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소개

봄의 길목에서 속초를 만나다

서울시 양천구 김정미


  태어나면서부터 나는 바다와 가까울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섬 ‘제주’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산간 마을도 아닌 바닷가 마을, 그 중에서도 해수욕장 근처에 살았기에 어려서부터 질릴 정도로 바다를 보며 자랐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올해로 4년 째. 서울에서 가장 갑갑했던 건 바다를 볼 수 없다는 점이었다. 그나마 도심을 가로지르는 한강이 있어 살만했지만 강은 바다와 같지 않다. 강이 ‘이모’라면 바다는 ‘엄마’와 같다고나 할까.


  바다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칠 때 쯤, 동해바다로 떠나기로 했다. 내가 선택한 곳은 바로 강원도 속초. 지명이 지닌 본뜻과는 상관없이 ‘속세를 떠나 초원으로’와 같은 풀이를 내 멋대로 붙여가며 회색 도시를 무작정 떠났다.


  언 2년 만에 동해바다와의 조우를 앞둔 사랑하는 님을 만나러 가는 열여덟 소녀의 마음으로 정녕 설렜다. 3월 12일 토요일 아침 8시, 동서울터미널에서 속초행 버스에 오른 나는 기사아저씨가 열심히 운전하는 내내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간만에 꺼내 입은 노란 가디건이 봄의 정령을 흔들어 깨웠는지, 근래 기승했던 꽃샘추위가 한풀 꺾여 “주말에는 봄날처럼 화창하겠습니다”라는 일기예보가 내 귀를 즐겁게 했다. 출발이 무척 순조로웠다.

# 만남 1: 고요히 출렁대는 속초해수욕장.

 

제주바다를 비롯해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지역의 바다는 거의 빼놓지 않고 구경해본 듯하다. 동·서·남쪽 지역의 바다 중 으뜸을 뽑자면 ‘동해’다. 하얀 백사장, 눈이 시릴 만큼 파란 파도, 하늘과 바다를 구분할 수 없는 푸르른 수평선, 깊고 그윽한 바다를 말없이 바라보고 있노라면 인당수에 몸을 던진 심청이 마냥, 바다에 몸을 풍덩 던지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했다. 생을 이끄는 치명적인 아름다움이 그곳, 속초바다에 담겨있었다.

  같은 동해지만 강릉과는 또 다른 매력을 갖고 있었다. 바다는 아마 북쪽으로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나이를 먹나 보다. 더욱 깊고 그윽해지니 말이다. 속초 바다엔 주름은 없었지만 연륜이 느껴졌다.

  몇 명의 연인, 가족 단위의 사람들로 제법 한가한 모래밭에 털썩 주저앉았다. 돌고래, 대게 등 해수욕장 곳곳에 설치된 조형물 앞에서 익살스럽게 포즈도 취해본다. “그래, 나 참말 속세를 떠난 게 맞구나! 여기는 파라다이스야!” 엄마의 자궁에 웅크린 태아가 느낄 법한 안락함과 풍요로움을 속초해수욕장의 모래밭에서 느꼈다.

달려들었다가 금세 뒤로 물러나는 파도의 뒤를 쫒아 간만에 평화로운 달리기를 했다. 승자와 패자를 가르지 않는 공평한 달리기, 천천히 달린다고 손가락질 받지 않는 평화로운 달리기. 속초에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사람이 붐비지 않는 바다는 쓸쓸하기 마련인데 속초 바다는 전혀 그렇지 않다. 저기 홀로 덩그러니 놓여있는 섬 ‘조도’을 손으로 감싸 쥐어본다. 전화로 예약한 민박집에 도착해 창문을 열어보니 조도는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다. 혹시나 외로울까 싶어 반가운 마음에 손으로 조섬을 따뜻하게 감싸주었다.

 

 # 만남 2: 아바이순대, 새우튀김, 회…풍요롭다!

  슬슬 배꼽시계가 울리기 시작할 때 즈음, 민박집이 있는 조양동을 나와 아바이마을로 이동했다. 자가용이 없어 1박 2일 동안 여행하기에 시간이 부족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충분히 걸어서도 돌아다닐 수 있는 거리였다.


  바닷길을 따라 청호초등학교를 지나 북쪽으로 올라가니 곳곳에 ‘아바이 순대’라는 상호명을 지닌 가게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부둣가에 다다르니 마침 ‘아바이 마을’에 대한 설명이 적힌 팻말이 여행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아바이 마을은 1·4후퇴 당시 국군을 따라 남하한 함경도 일대의 피난민들이 전쟁이 끝난 뒤 고향으로 돌아갈 길이 없게 되자, 휴전선에서 가까운 바닷가 허허벌판에 집을 짓고 집단촌락을 형성해 생긴 지역이라고 한다. 함경도 출신 가운데서도 특히 늙은 사람들이 많아, 함경도 사투리인 아바이를 따서 아바이마을로 부르기 시작한 것이라고.

  숨이 턱밑까지 차오를 정도로 달리기만 하면 닿을 것 같은 고향을 두고 살아가야 하는 삶이란 어떠할까.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희망을 안고 실향민들은 순대를 만들었으리라. 순대 속을 꽉꽉 채우며 아바이, 어마이에 대한 그리움도 묵묵히 채워 넣었을 것이다.


  아바이 마을은 KBS2TV 인기 프로그램 ‘1박 2일’ 촬영팀이 다녀간 후로 문정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곳곳에 ‘1박 2일팀 다녀간 곳’이라는 현수막과 스타의 얼굴이 크게 인쇄돼 있었다. 1박 2일이 실제로 식사를 하고 돌아갔다는 한 식당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아바이 마을에서 갯배를 타면 중앙동으로 넘어갈 수 있다. 갯배 체험은 다음날로 미루기로 했다. 대신 바다내음을 맡으며 외옹치항과 대포항을 구경하기로 했다.

  “자가용이 없는데 어쩌지?”하는 생각은 기우였다. 속초는 버스 노선이 제법 잘 꾸려져 있어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저렴한 값으로 도시 곳곳을 여행할 수 있다. 튼튼한 하체를 지닌 나는, 버스 보다는 걷는 것을 택하기로 했다.

  아바이 마을에서 청호대교를 건너 대포항까지 걸어갔다. 청호대교를 자가용을 타고 건넜다면 모를 법한 속초의 풍경들을 만날 수 있었다. 빨간 대교 위에서 멀리 바다와 마을을 내려다 본 적이 있는가. 속초 8경 중 하나인 청초호를 바라본 적이 있는가. 속초에서만 볼 수 있는 그런 풍경이 있다. 바다와 삶의 내음이 어우러진 풍경들이 바로 그것이다.


  바다가 아닌 육지 안으로 파고 들어가 시내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구경하며 걷다보니 속초터미널에 도착했다. 다시 속초해수욕장의 바닷가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니 자그마한 외옹치항이 나온다. 외옹치 역시 속초의 8경 중 하나다. 외옹치는 예전부터 주민들이 즐겨 이용하던 속초의 대표적 해수욕장이었지만 군사적인 이유로 철조망이 설치되며 일반인들의 출입이 통제되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바다는 변함이 없다. 늘 그렇듯 푸르고 늘 철썩이고 노래한다.

  외옹치를 지나 해가 질 때 즈음, 도착한 곳은 바로 대포항. 마치 서울의 명동거리를 걷듯, 인파의 행렬로 발 디딜 공간이 없다. 속초해수욕장에서 평화의 내음을 맡았다면 이곳에서는 삶의 내음을 맡을 수 있다. 건어물과 회, 생선 등 풍요로운 먹거리가 여행객의 발길을 잡아끈다.

 

  이리저리 길을 재촉하는 사람들 틈에서 고개를 열심히 돌리며 먹거리를 찾던 중, 새우튀김 가게를 발견했다. ‘별미’라는 말을 듣고 꼭 한 번 맛보고 싶던 참이었다. ‘인기는 또 다른 인기를 부른다’고 했나. 이 곳 역시 똑같이 생긴 포장마차들 사이에서 한 집이 유난히 성황이었다. 길다란 줄을 선 후, 드디어 입에 넣은 새우튀김의 맛은 일품이었다. 통통한 새우를 고스란히 튀김옷을 입혀 요리해서인지, 뼈째 씹히는 날 것 그대로의 맛이 훌륭했다. 별미 중의 별미였다.

  이렇게 공기 좋고 풍경 좋은 곳에서 먹거리를 풍요롭게 먹을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그래서 내게 속초 ‘파라다이스’와 진배없다. 우럭과 광어, 오징어 등이 담긴 바구니 하나에 고작 3만원이라니! 그 자리에서 회를 뜬 후, 숙소로 향했다. 시장기가 발동해서인지 걸어갈 자신이 없던 나는 그제야 버스에 올랐다. 5분 만에 조양동에 도착. 민박집에 들어선 후, 차창 밖으로 보이는 조도를 바라보며 회 한 점에 소주를 털어 넣었다. 


  “캬~ 삶의 낙이란 이런 거지” 고작 20대 후반에 인생의 절반 이상을 산 것 같은 늙은이스런 말을 내뱉으며 여독을 풀었다. 대한민국의 많은 고장들 중, 속초에 가기 전까지 나는 늘 최고에 주저 없이 ‘강릉’을 뽑았다. 거나하게 술이 된 나는 잠자리에 들며 “강릉보다 속초가 더 좋아”라는 애정공세를 차창 밖으로 내던지며 잠을 잤다.

 

 # 갯배와 영금정, 또 다른 바다 풍경

  이튿날인 3월 13일 일요일, 속초항으로 건너가기 위해 갯배에 올랐다. 편도에 200원. 놀라울 만큼 저렴한 가격이다. 이쪽과 저쪽 사이의 거리가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해도 하루종일 배를 몰고 손님들을 태우는 사공의 노동력에 비하면 후한 가격인 듯 싶어 마음이 숙연해진다.

  날씨가 몹시 화창했다. 자켓을 벗고 가디건 차림으로만 다녀도 될 만큼 봄이 성큼 다가온 듯 싶었다. 꽃샘추위는 잠시 물러선 듯 보였으나 어찌됐든 봄의 정령이 속초에 발을 내딛은 것만은 확실했다. 봄의 길목에서 속초와 마주한 것이 내내 반갑고 즐거웠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배를 모는 사공을 따라 아바이 마을에서 건너편으로 넘어간 나는 속초항을 따라 동명동에 위치한 영금정에 도착했다.


 영금정은 바닷가에 흩어져 있는 암반 지역을 부르는 말이다. 이 곳에는 원래 높은 바위산이 있었고 그 모양이 정자 같이 보였다고 한다. 바위에 파도가 부딪치는 소리가 신비해 마치 신령한 거문고 소리 같다고 하여 ‘영금정’이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평화로워 보이는 풍경이지만 이 곳에도 역사의 아픔이 존재했다. 일제 시대, 속초항을 개발하며 바위산을 부수고 그 옆에 방파제를 쌓았다고 한다. 때문에 바위산은 없어지고 넓직한 바위군으로 형태가 바뀌었다고.

 

  영금정에서 바라본 바다는 전날 만난 바다와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해수욕장의 바다가 평화를 느끼게 했고, 외옹치항의 바다가 삶의 내음을 느끼게 했다면 이곳 영금정에서 바라본 바다는 엄숙함을 느끼게 했다. 저기 바다를 따라가면 고향을 그리며 마을을 만들고 정착한 아바이 마을 사람들의 영원한 고향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을 하니 더더욱 그랬는지도 모른다.

  계단을 따라 속초전망대에 올랐다. 속초항의 일제시대 모습 등을 살필 수 있는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다. 계단을 따라 좀 더 올라가니 통유리로 된 넓직한 공간이 나온다. 겨울날 이 곳에 들려 벤치에 앉아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좁은 통로를 따라 올라가니 야외 전망대가 나온다. 속초시의 곳곳이 눈앞에 펼쳐진다. 손을 뻗으면 장난감 집듯 건져 올릴 수 있을 것만 같은 아기자기함이 도시의 매력을 배가시킨다. 일제시대 망가지지 않았다면 그대로 남아있었을 법한 편편한 바위지대가 눈에 들어온다. 낚시를 하는 사람, 바위 너럭에 누워 일광욕을 하는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이 휴일의 즐거움을 속초의 품에서 만끽하고 있다.

  사람들 표정에서 행복함이 묻어난다. 사람들에게 숨길 수 없는 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행복한 표정이다. 어떤 삶을 살았든, 어떤 가치관으로 생을 마주하고 있든 자연 앞에서 인간은 모두 공평해진다. 그렇기에 속초 앞에서 나, 너, 우리는 무장해제 당한 채로 웃음꽃을 피우고 있나보다.

  전망대 위에서 바라봤던 바위 너럭에 올라 발라당 누워버렸다. 따뜻한 햇살이 이불처럼 내 몸을 포근히 감싼다. 조선시대 한량들의 삶이란 이러지 않았을까. 전국의 많은 한량들 중에 속초에 살았던 한량들이 제일 행복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걷다가 바다 보고, 정자에서 시를 한 수 읊고, 바위에 누워 바닷바람 맞으며 공상에 잠기는 삶이란….


  내 나이 스물 여덟. 눈 뜨면 바다가 보이는 내 고향 제주를 떠나 회색 숲 서울에서 살며 나는 몹시도 바다가 그리웠다. 틈만 나면 동해로 서해로 남해로, 여행 삼아 바다를 구경하곤 했다. 바라보고 또 바라봐도 질리지 않는 바다… 바다… 바다….


  1박 2일 간의 속초 여행을 통해 나는 느꼈다. 바다는 내게 양수와도 같다고. 그리고 속초는 내게 엄마와도 같다고.

  비교적 한가한 식당에 들려 아바이 순대와 오징어 순대 세트를 주문했다. 오징어 순대를 잘라 계란옷을 입혀 튀긴 모양이 참으로 먹음직스럽다. “연예인들이 다녀갔든 안 다녀갔든 순대 맛은 다 똑같다”라는 주인 아주머니의 말을 들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기름지면서도 푸짐한 한 상이 여행객의 마음을 배부르게 채워 주었다. 서울에 와서도 내내 생각나는 고향의 맛이었다.